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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Joaquin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아랑훼즈 협주곡」은 로드리고가 아랑훼즈의 별궁을 방문했을 때, 옛 역사에 대한 회고와 나아가서는 그 곳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곡은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 스페인 무곡적인 리듬의 기타독주가 오케스트라의 여린 지속음에 받쳐져 연주되는데, 아랑훼즈 별궁의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 맹인으로 스페인 정서에 넘치는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로드리고는 위대한 음악가이기에 앞서 마음의 눈으로 아랑훼즈를 볼 수 있었던 진실한 사람이었다.


전곡 중에서 애수 띤 '잉글리시 혼'의 향수에 젖은 테마가 나타나는 제 2악장은 특히 유명하여 단독으로 연주되는 기회가 많으며, 또 「사랑의 아랑훼즈」라는 제목으로 팝 음악으로도 편곡되어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아랑훼즈’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로부터 남쪽으로 약 47km쯤 떨어진 고장의 이름인데,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고원의 아름다운 정원과 주변환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로드리고(J. Rodrigo)는 이 곡에 대해 우수에 사로잡힌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자, 귀족적인 것이 민중적인 것과 융합되어 있던 18C 스페인 궁정의 모습이라고도 했고, 또 형식적으로나 정감적으로나 고전성과 민중성을 종합한 것이 되기를 의도했다고 한다.

현악기와 목관악기, 금관악기(트럼펫호른)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선율이 무척 아름답다. 음량이 작아 소품연주에만 쓰이던 기타의 영역을 넓혀 주요 협주악기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는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전 3악장(1악장: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2악장:아다지오, 3악장:알레그로 젠틸레)으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기타를사용하여 지중해 생활의 색깔·분위기· 멜로디를 멋들어지게 그려 냈고,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Concierto andaluz》과 함께 로드리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출처 : http://pann.nate.com/talk/114593349




Rodrigo / Narciso Yepes, 1969: Concierto de Aranjuez - Original DG LP, Indexed
Digitized from the LP shown above, issued in 1970 on the Deutsche Grammophon label, catalogue number 139 440. [1.Allegro con spirito, 2.Adagio (6:21), 3.Allegro (17:43)]




Concerto de Aranjuez (1939) - Joaquín Rodrigo - DRSO

Pepe Romero - Rafael Frühbeck de Burgos





Concierto de Aranjuez - John Williams, BBC Proms 2005. Full Concert

Live from the Royal Albert Hall, London.




Paco De Lucía - Concierto de Aranjuez (Full)

"Concierto de Aranjuez" recorded live at Bulevar de la Casa de la Cultura de Torrelodones, Spain. "Iberia" recorded at Cinearte, Spain. This 1991 release, recorded live at Teatro Bulevar de la Casa de la Cultura in Torrelodones, Spain, features Spanish composer Joaquín Rodrigo's best-known composition, 1939's "Concierto de Aranjuez," performed by flamenco guitar legends Paco de Lucía and Rodrigo, along with the Orquestra de Cadaqués.

1940년에 발표한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훼즈 협주곡'은 저음현의 지속적이고도 활발한 공명을 통해 아란훼즈 왕궁의 지적 정취를 독창적으로 들려줌으로써 로드리고의 명성은 급작스럽게 퍼져나갔다. 특히 제 2 악장의 주제 선율은 이후 파퓰러 음악이나 재즈를 비롯하여 각종 악기로 편곡 연주 되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파야처럼 스페인 민중 속으로 깊이 침투하는 것은 아니였다. 대신 그는 스페인의 색채를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적인 양식으로 소화시켰다. 특히 협주곡에 있어 탁월한 면모를 보였는데 '기타 협주곡'아랑훼즈' 이 외에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과 '4 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이 유명하다.


스페인 저작권 협회에 따르면 그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편곡, 연주된 클래식 음악으로, 약 50 여종의 편곡 음반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플라멩고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의 버전이였다고 한다.


아랑훼즈(Aranjuez) 궁전



Regino Sainz de la Maza

호아퀸 로드리고가 1940년 38세의 나이에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작곡한 Conciertto de Aranjuez for Guitar(아랑훼즈 협주곡). 이 아랑훼즈 협주곡은 당시 친구이자 당대 스페인 최고 기타리스트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Regino sainz de la Maza. 1897~1982) 를 위해 작곡한곡입니다.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는 스페인이 낳은 작곡가로 주로 훌라멩고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마드리드왕립 음악원에서 수학하면서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제자인 “다니엘 포르테아”(Daniel fortea)로 부터 사사를 받었으며 젊은 시절부터 스페인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1940년 12월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독주로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모두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음량차이로 인해 처음에는 협연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아랑훼즈는 마드리드 남방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으로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습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 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 협주곡은 나포레옹 이전의 마지막 왕이 머물던 궁전의 생명속으로  혼을 불러들이고자 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아랑훼즈 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승화시켜 그려냈다는 점이고. 또 에스파냐 민속 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였다는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이 협주곡을 쓰면서 “신과의 대화”라고 표현 했다고 합니다. 극적인 영감과 낭만적인 선율을 유려하게 수를 놓아 조화롭게 흐르게 다룬 것은 그의 내재해 있던 고통과 슬픔의 환란들을 고스란히 여기에 담아낸 인생 자체였기 때문일 것입이다. (출처 : 세계풍물여행기)




2nd MovementAdagio


작곡가의 아내인 카미는 이를 가리켜 ‘허니문의 행복을 담은 사랑의 노래’라고 했으며, 로드리고 자신은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이 나누는 애수의 대화’라고 칭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잔한 선율이 그리움과 우수로 가득찬 향수를 자아낸다.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사랑의 아랑훼즈 (Aranjuez Mon Amour)' 등이 유명하다.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2.Adagio - Narciso Yepes (Guitar)


20세기에 작곡된 협주곡들 가운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 작품은 앞을 못 보는 작곡가가 파시스트 정권의 폭정 시절에 18세기 부르봉 왕가의 화려한 정원을 그리며 작곡한 도피적인 작품이었다.

1악장과 3악장은 별로 대단할 게 없지만, 가운데 아다지오 악장은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이 사무친 악장이다. 기타의 네 번의 탄주에 이은 잉글리시 호른의 독주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 이후 최고의 선율이다. 이 악장의 대부분의 매력이 사실상 이 두 악기가 주고받는 대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드리고의 애절한 선율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 음반에 큰 영감을 주었고, 프랑스 가수 리샤르 앙토니가 가사를 붙인 '내 사랑, 아랑훼즈'라는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다. 작곡가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의 매력은 "형식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장점이 잘 어우러진" 데 있다. 탄탄하게 통합되었다기보다는 왠지 무너져 내릴 듯이 허약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이 선율에 보편적인 매력을 선사했다. (출처: eitherway.egloos.com)




John Williams - Concierto de Aranjuez 2nd Movement  Adagio

The Seville Concert  Sony 53359 Released 1993. Recorded November 1992 

at the Royal Alcazar Palace, Seville, Spain. With Orquestra Sinfónica de Sevilla

José Buenagu Conductor (on Vivaldi and Rodrigo concerti)


The second movement Adagio is likely the most famous, and most recognizable part of the piece, and used in numerous movies, television shows, and commercials. Consequently many people will have heard Concierto de Aranjuez without knowing its title or composer.


This movement is marked by its slow pace and quiet melody, introduced by the English horn, with a soft accompaniment by the guitar and strings. A feeling of quiet regret permeates the piece. Ornamentation is added gradually to the melody in the beginning.





ANGEL ROMERO - CONCIERTO DE ARANJUEZ - ADAGIO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HALL 1992.
NATIONAL ORCHESTRA OF SPAIN CONDUCTED BY RAFAEL DE BURGOS.





Jose Carreras - "En Aranjuez con tu Amor"

Jose Carreras sings a version of 'En Aranjuez contu Amor' in the studio;
The Angel of Orchestra of London conducted by Micheal Reed;




Placido Domingo - En Aranjuez Con Tu Amor






IL DIVO - EN ARANJUEZ CON TU AMOR

테너 3명과 바리톤 1명으로 구성된 독일의 팝페라 그룹







Joaquin Rodrigo(1901~1999)

맹인 작곡가인 로드리고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났으므로 그것을 알게 된 양친은 저명한 음악가에게 보내어 기초교육을 받게 했고, 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음악 공부에 힘을 기울인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대표적 작곡가로 떠올랐다. 그는 1901년 11월 22일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으나 불과 3살 때인 1904년에 안질에 걸린 것이 원인이 되어 그 해 갑자기 실명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묘방을 다 써서 개안을 위한 노력을 해보았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가고 일생을 어둠속에서 보내게 된다.

이런 로드리고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특히 기타에 대한 강한 애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로드리고의 전부라고 할만큼 생의 큰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렌시아 음악원을 비롯 프랑스의 음악원인 에꼴 노르말 드 파리에 입학함으로써 그는 기타음악을 클래식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고, 그후에 로드리고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귀국하게 된다. 로드리고의 음악생활은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로드리고가 발표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 그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1940년 38세의 나이에 작곡한 아랑훼즈 협주곡이다. 이곡은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절찬을 받은 작품이다.

'아랑훼즈'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옛 도시의 이름인데, 이곳은 10세기경에 세워진 어떤 국왕의 별궁이 있던 곳으로 고원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스페인 굴지의 유명한 정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출처 : http://pann.nate.com/talk/114593349






로드리고가 위대한 음악가가 된 이면에는 헌신으로 도움을 주었던 두 사람이 있다. 그 하나는 라파엘 이바네스로 그는 로드리고의 일거수 일투족을 거들었던 아버지의 고용인으로서 로드리고가 "내게 눈을 빌려준 사람"이라 칭했을 만큼 수년 동안 악보 필경사 역할을 하며 로드리고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일을 했다.

 

한편 작곡가로서의 명성과 음악의 깊이가 한층 무르익어 가던 1928년 로드리고는 터키계의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캄히를 만난다. 캄히는 한 집시로부터 이름이 "JO"자로 시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들었다. 이 예언을 한동안 잊고 지내던 어느날 그녀는 로드리고의 소품 '아침 수탉'의 전주곡을 우연히 접했다.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지만 연습 끝에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친구 알렉산데르 데메트리아드가 친구의 부탁이라면서 편지 한 통을 들고와 독일어로 번역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번역을 부탁했던 이가 다름 아닌 로드리고였다.

 

그녀는 기쁨에 들떠 데메트리아드에게 로드리고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넣었다. 빅토리아는 일찍이 익혀 놓은 로드리고의 전주곡을 연주했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다. 집시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부모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33년 결혼식을 올렸다. 로드리고는 아내를 일컬어 "삶과 굶주림, 일과 영광을 나와 함께 나눴다"고 회상했다.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와 

빅토리아 카미(Vitoria Kamhi)



20세기 최고의 기타음악 작곡가 후아퀸 로드리고

 

로드리고의 기타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기타를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칭송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의 기타 협주곡들은 어느 악기보다도 부드럽고 어느 악기보다도 강렬한 힘으로 청중들을 매혹시킨다. 한동안 기타하면 세고비아를 떠올렸던 적이 있다. 세고비아가 기타연주의 대명사라면 기타음악 작곡의 대명사는 로드리고이다. 주말의 명화 시그널로 수십년간 사용하고 있는 "아랑훼즈 협주곡"은 로드리고를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린 1등 공신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타곡이기도 하지만 팝과 클래식을 아울러 당대의 기라성 같은 연주가들이 빼놓지 않고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다.

 


시력을 잃은 대신 음악의 세계에 밀착

 

로드리고는 1901년 11월 22일 스페인 동부지방 발렌시아의 사군토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특출한 음악 재능을 예고하듯이 그는 음악을 수호하는 성인 세실리아의 날에 태어 났다. 로드리고는 어린 나이에 실명의 위기에 처했다. 1905년 사군토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던 디프테리아가 마을을 휩쓸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갔다.

 

다행이 로드리고는 회복되었지만 시력에 치명적인 손상이 남아 거의 실명상태에 빠졌다. 나중에 홍채 이식수술 등 여러 번의 수술 끝에 가까스로 아주 밝고 화려한 색깔 정도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로드리고는 성인이 된 후에 각막이식 수술을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이것이 화근이었다. 의사는 시력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으나 3주일 후 녹내장이 심해져 영원히 시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네살 때 로드리고 가족은 발렌시아로 이주했다. 7세 때 로드리고는 시각장애아 특수학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문학과 음악에 일찌감치 특별한 발전을 보였다. 시각을 잃은 대신 음악 세계에 더욱 밀착하게 되어 어려서부터 음악에 비상한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점자를 통해 일반과목과 함께 피아노와 음악도 공부했는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음악교사들이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발렌시아에서 로드리고 가족들은 아폴로 극장에서 자주 공연을 관람했으며 어린 로드리고는 공연에 수반한 음악에 각별히 이끌렸다. 특히 "리골레토"를 처음 들었을 때 음악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임을 깨닫게 되었고 16세 때 음악의 길을 결심했다. 로드리고는 비록 등록을 할 수는 없었지만 발렌시아 콘서바토리에서 프란시스코 안티츠라는 선생님으로부터 화성과 작곡법을 배웠다.

 

그러나 완고했던 아버지는 그가 음악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아버지는 무척 거친 분이 어서 형제들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나는 매우 유순한 아이였고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걸 원치 않으셨다. 더더군다나 음악공부는 질색이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딱 한번 거역했는데 결국은 신에게 감사할 일이 됐다."

 

아버지의 반대가 걸림돌이기는 하였지만 이후 로드리고의 음악 여정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로드리고는 안티츠 밑에서 음악을 배우며 몇 개의 관현악 곡을 썼는데 1924년 첫작품 음유시인이 발렌시아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됐다. 부모님은 그 음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부모의 후원 없이 빠른 속도로 명성을 쌓아나갔다. 1925년 초연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어린시절을 위한 5개의 소품"에는 엄청난 갈채가 쏟아졌다.

 

로드리고는 일찌감치 성공의 길에 올라섰지만 가야할 길은 멀었다. 스승과 조언자들은 그에게 음악 세계가 더 넓어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음악인 알베니스, 그라 나도스, 마누엘 데 파야 등이 그랬듯이 로드리고는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1927년 26살의 로드리고는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훗날 디즈니 만화 "환타지아"에 삽입도어 인기를 끔)로 유명세를 타던 작곡가이자 믿음직스런 교사 폴 뒤카의 작곡 교실에 등록했다. 로드리고는 곧 뒤카의 촉망받는 제자가 되어 5년간 배웠다. 로드리고는 따스하고 순수한 정열과 지중해의 목가적인 생활습성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배경이 그의 음악에 그대로 살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와 열정, 자유분방함은 작곡가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서 의심 많고 재치 있고 세련된 뒤카는 이상적인 스승이었다. 뒤카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한편 로드리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에는 브레이크를 걸었다. 뒤카는 로드리고가 작품을 발표할 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부유한 후원자들을 소개해 저택에서 몇몇 작품을 초연함으로써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랑페스협주곡 발표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로 등장


로드리고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모리스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음악가들과 두루 만남을 가졌다. 특히 뒤카의 소개로 "불의 춤"이라는 강렬한 곡으로 오늘날까지도 깊은 인상을 남겨놓은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를 만났다. 50대에 접어든 파야의 조언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독특한 음악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하던 1920년대 말에서부터 1930년대 초까지의 작품들은 파야의 격려 속에 만들어졌다.

 

1933년 로드리고는 빅토리아 캄히와 결혼을 하고 잠시 스페인에 머물렀다. 로드리고는 활발한 활동으로 프랑스에도 서서히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그는 마드리드 맹인대학 교수에 임명됐지만 거절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 그러나 로드리고는 파야의 주선으로 파리의 장학생으로 2년간 더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전을 피할 수 있었다. 로드리고는 "참혹한 내전 기 간 동안 에스파냐를 떠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파야 덕분이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내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으로 국가 장학금 지급이 중단되었고 아내의 부모가 로드리고 부부의 생활을 보살폈고 아내는 악보필사 일을 했다.

 

로드리고는 잠시 파리에 머물다가 프라이부르크, 잘즈부르크 등지로 다녔고 그 동안 음악은 날로 성숙을 더해갔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서자 비로소 필생의 대표작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1938년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아랑훼즈 협주곡"에 착수해 스페인 내전이 끝난 후인 1940년 말에 완성해 바르셀로나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이곡은 반 세기가 흐른 지금도 인기가 식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선 곡이었다.


로드리고 부부는 다시 마드리드에 정착했고 이후 로드리고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높아갔다. 그의 음악은 세계 곳곳에서 갈채 속에 연주됐으며 로드리고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프랑스정부는 레종도뇌르 십자훈장을 수여하는 한편 프랑스의 문학예술상 수상자로 선정했고 1991년 후앙카를로스 국왕은 아랑훼즈 정원의 후작을 내렸다. 로드리고는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즈와 줄리앙블림, 첼리스트 줄리앙 로이드 웨버,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 등 현재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주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대중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로드리고는 수많은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어냈는데 독주악기를 위한 것이든 전체 오케스트라 를 위한 것이든 자신의 악보는 모두 점자로 찍어내고 그 다음에 필경사에게 구술을 해 옮긴 다음 비로소 악보로 만들었다. 마음으로 들은 것을 오선지 위에 점자로 일일이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힘겨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휘파람으로 아랑훼즈 협주곡를 아내에게 불러주고 이를 다른 사람이 모음 악보로 만든 것이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제기했을 때 로드리고는 몹시 불쾌해했다. 로드리고는 기타에도 능숙하지 못하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얼리니스트이지만 기타로는 네 개의 음을 연달아 칠 수조차 없을 만큼 문외한인 그가 기념비적인 기타곡들을 무수히 작곡해 냈다는 사실은 놀랍다.

 

로드리고는 1997년 7월 21일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중했던 동반자 캄히를 떠나 보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후 1999년 7월 6일 20세기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한 위대한 작곡가는 마드리드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출처: 함께걸음)




아랑훼즈(Aranjuez) 궁전과 황태자의 정원




Nana Mouskouri - Aranjuez mon amour




Il Divo & Sarah Brightman - En aranjuez con tu amor




Aranjuez Mon Amour - JEAN FRANCOIS MAURICE




Aranjuez Mon Amour - Paul Mauriat





80년대 KBS2 TV의 영화 프로그램 '토요명화'의
시그널뮤직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11월, 28년만에 폐지)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Concierto andaluz》

RODRIGO- CONCIERTO ANDALUZ (THE ROMEROS)

san antonio symphony orchestra, dir-victor alessandro, mercury records

Concierto Andaluz for 4 Guitars & Orchestra - Joaqúin Rodrigo(1901~1999), 
로드리고 /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1악장. Tiempo de Bolero  2악장. Adagio  3악장. Allegretto

이 곡은 로드리고가 기타계의 왕족으로 불리우는 로메로 일가를 위해 작곡했다고도 하는데
1968년에 창단된 이 로메로스 기타 4중주단이 초연하였으며 로메로스 4중주단은 

아버지 셀레도니오 로메로(Celedonio)와, 장남 셀린(Celin),둘째아들 페페(Pepe) 

막내아들 앙헬 (Angel Romero)등 로메로 부자들로 구성되었다.





Rodrigo concert Andaluz for four guitar and orchestra 2011.05.18 




Andalusia


안달루시아 지방은 가장 인구가 많은 스페인 자치 지방으로서 두 번째로 크기가 큰 자치 지방이기도 하다. 수도는 세비야이다.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지중해를 끼고 있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대서양에 맞닿기도 한다. 지중해와도 만나며 지브롤터 해협과 만난다.


안달루시아의 문화는 반천 년의 무슬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코르도바는 서유럽과 세계를 통틀어 당대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의 영화를 누렸다. 무어 인은 안달루시아에 대학을 설립하고 장학금 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고의 문화적 업적을 이뤄내었다. 서구의 의학과 약학, 철학, 수학에 있어서도 유대인과 무어인의 연구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최고의 업적을 남겼다. 세비야를 비롯한 수많은 곳에 웅장한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콜럼버스의 함대가 출전한 항구도 남아 있다.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거의 안달루시아 방언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카나리아 제도에서도 널리 쓰이며 세비야가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 주요 통로였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



안달루시아는 바바리안의 땅이다. 물론 서유럽인의 관점이다. 스페인 남부의 이 황량한 땅에는 빛과 문명, 궁핍과 이질적인 것들이 혼재해 있다. 라틴과 이슬람,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참으로 수수께끼의 근원을 가진 집시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이상을 서로 뒤엉켜 뭐라 표현하기조차 힘든, 오직 그 땅에 사는이만을 빼고는 세계 모든 종족들에게 엑조틱한 감상을 안겨주는 땅이다. 마치 극북(極北 - Far North)의 땅, 항해자의 이상향인 툴레(Thule)처럼... [출처] 안달루시아와 툴레, 그리고 농담|작성자 아침노을






The Romeros


기타계의 왕족이라 불리우는 로스 로메로스(Los Romeros)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아버지 Celedonio Romero 와 그의 세아들 Celin, Pepe, Angel 의 4부자로 구성된 기타 4중주단이다.

스페인 작곡가인 Rodrigo 는 로메로 4부자를 위해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다루시아에서 Victor Alexandro가 지휘하는 San Antonio Symphonia와 협연하여 열광적인 찬사를 받으며 로메로스라는 이름을 관객들에게 확고히 심어주었다. 이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로맨틱, 종교, 플라멩코에서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독주, 2중주, 4중주등으로 세계의 무대를 석권하였다. 이들은 뉴욕 필하모니, 보스톤 팝, 시카고 심포니,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명 교향악단과 협연을 한 바 있다. 

현재는 아들과 손자들이 함께 4중주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앙젤의 아들 리토(Lito) 셀린의 아들 셀리노(Celino)가 1990년부터 4중주에서 함께 연주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아버지인 셀레도니오 로메로는 지난 1996년에 타계했다.


Pepe Romero


1944년 3월8일 스페인 말라가(Málaga) 출생. 기타 계의 왕족이라 불리는 로메로 가(LOS Romero)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Jose Gallego Romero 이다.


7살 때부터 이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페페 로메로는 세계적인 클랙식 및 클라멩코 기타연주가, 뛰어난 기교와 악기에 대해서 다채로운 음악적 해석으로 유명한 음악가이다. 미국, 유럽 외 많은 국가에서 연주를 했고, 수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다. 15세에 첫 레코팅을 시작했고 빅토리아 대학에서 음악부문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은 대단해서 호아킨 로드리고(Joaquín Rodrigo), 페데리코 모레노 토로바(Federico Moreno Torroba), 레브.크란시스코 드 마디나(Rev. Francisco de Madina), 로렌조 팔로모(Lorenzo Palomo), 마이클 지오롯(Michael Zearott), 그리고 셀레도니오 로메로(Celedonio Romero)를 포함한 많은 저명한 작곡가들과 연주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50장 정도의 앨범을 발표한 페페 로메로는 조국 스페인 정부가 주는 최고의 훈장 'Grand Plaza 을 수상한 스페인의 자랑이며 고향 말라카에는 그의 기념관까지 만들어진 진정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Los Romero_Concierto de Andaluz

Los Romero en Bogotá...
Auditorio de la Universidad Nacional de Colombia Leon de Greiff.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John WIlliams - Rodrigo: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Edited by Andres Segovia)


"Fantasía para un Gentilhombre" was written in late 1954 especially for the great Spanish guitarist Andres Segovia. It is based on music written circa 1667 by Gaspar Sanz, a noted guitarist who was employed by both Philip IV of Spain and his son John of Austria. Sanz's melodies vividsy reflect the change in musical taste that took place in Spain between the last years of the sixteenth century and the middle of the seventeenth, a period in which the noble and stately pavanes and gailliards gave way to the lighter dance style of the Villanos, Españoletas and Canarios.


The 'Fantasía' is divided into five movements.

1. Villano y Ricercare: Adagietto [05:00]

2. Españoleta e Fanfare de la Caballeria de Nápoles: Adagio [04:57]

3. Fanfare de la Caballeria de Nápoles: Allegretto [05.05]

4. Danza de las Hachas: Allegro con brio [01:56]

5. Canario: Allegro ma non troppo [04:45]



Andres Segovia -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by Joaquin Rodrigo
Andres Segovia(1893~1987), guitar / Symphony of the Air / Enrique Jorda, conductor


로드리고는 1939년 불후의 명곡인 "아랑훼즈 협주곡"을 작곡, 사인스 데 라 마사(Sainz de la Maza)에게 헌정, 초연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자신에게 곡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단히 삐진 세고비아는 급기야 평생토록 로드리고의 곡은 연주하지 않겠노라고 공언했고 로드리고는 속좁은 Maestro를 달래기 위해 그가 61세가 되던 1954년 이 곡을 작곡하여 세고비아에게 헌정 했다고 전해지고있다. (밴댕이와 못말려)




Pepe Romero plays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by Joaquin Rodrigo

Concierto de Gala: Pepe Romero, guitar,
Orquesta Filarmonica de la UNAM, Manuel Goldof, conductor, 1.12.1996





Narciso Yepes - Fantasía para un Gentilhombre  

Homenaje de Narciso Yepes a Andrés Segovia. Madrid, 1987.









Rodrigo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Espanoleta(2nd mov.)

John Goulart Plays and Conducts Rodrigo, Guitar by Eric Sahlin





Joaquin Rodrigo - Fantasía para un gentilhombre - Espanoleta y Fanfare

Narciso Yepes, Odon Alonso; Orquestra Sinfónica R.T.V. Española













Fantasia for a Gentleman Concerto for guitar and orchestra.

1954년 로드리고는 오늘날 전설적인 기타연주자로 알려져 있는 '안드레스 세고비아'로부터 기타 협주곡을 의뢰받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탄생된 곡이 바로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입니다.

여기서 어느 귀인은 세고비아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고 17세기 에스파냐의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가스파르 산츠'를 말합니다.

로드리고는 4개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서 무곡 선율을 아주 매력적으로 현대적 관현악에 접목시켜 아름답고 온화하면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결과를 얻어냈는데 바로 이 점이 연주자로 하여금 뛰어난 기교와 힘이 느껴지는 풍부하고 섬세한 연주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음악사랑,명반산책)



Andres Segovia

Symphony of the Air, Enrique Jorda 



그가 61세가 되던 1954년,그는 같은 나라 출신이며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이고 작곡가였던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 1893~1987)에게 헌정코자 그 곡을 적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작품명에 나오는 ‘귀인’은 정작 세고비아가 아닌 이였단다. 그 귀인이란, 바로 가스파르 산츠(Gaspar Sanz)라고 알려져 있다. 


산츠는 17세기 에스파냐(스페인의 옛 이름)의 기타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단다. 산츠가 작곡한 그 유명한 기타 곡은 ‘에스파뇨레타(Espanoleta)’이며, 이를 풀이하면 ‘에스파냐풍(- 風)’ 또는 ‘에스파냐풍으로’가 된다고 한다. 로드리고는 평소 산츠를 너무도 존경했고, 그의 곡 ‘에스파뇨레타’도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 곡을 교묘히 원용(援用)하여 작곡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이다. 


4악장으로 구성된 그 곡. 특히 제2악장은 산츠의 그 곡에 흐르는 주제를 그대로 쓰게 된다. 심지어 제2악장의 부제(副題)에도 ‘Espanoleta’라는 말이 그대로 쓰여 있다. 이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은, ‘아랑훼즈 협주곡’과 더불어 로드리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로드리고는 이 곡도 남한테 헌정하기 위해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1차적으로는 세고비아였지만, 2차적으로는 이미 수 세기 전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살다가 간 산츠였다. (출처 : 두루미 사랑방)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는 스페인 음악.. 특히 춤곡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뭐냐면 졸라 귀티나고 고급스런 취향의 파반느나 갈리아드 같은 춤곡이 짜부라지고 빌라노스.. 에스파뇰레타.. 카나리오스 같은 시골 동네 춤곡 같은 곡들이 득세를 하게 되었다는 것.. 바로 그 당시의 작곡가인 가스파르 산츠가 작곡한 춤곡과 선율들이 이 곡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 곡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취향과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여 무척이나 단순하고 꾸밈없는 멜로디를 지녔고.. 이러한 곡들을 판타지아라는 형태로 변형하는 것은 오리지날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귓구녕에도 맞춰야 하기 땜에 무척이나 까다롭고 조심스런 작업이 요구되는데.. 로드리고는 이 작업을 졸라 훌륭하게 해냈다고 한다.. 난 잘 모르겠지만.. -_-ㅋ 하긴 로드리고가 그랬단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은 산츠가 이 곡을 들었을 때  '이건 내 곡은 아닌데 내 자신을 느낄수는 있군' 이라고 하는 정도이다.. 훔.. 표절은 했는데 솜씨 좋게 해서 아리까리하다.. 머 이정도를 얘기하는 것 같음.. --;

유명한 두 번째 악장은 무척이나 심금을 울려주는데.. 시칠리아나와 꽤나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알고 보니 당시 17세기에 스페인 왕국과 나폴리 왕국이 정치.. 문화적으로 상당히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에스파뇰레타와 시칠리아나와의 유사성이 있었는데.. 당시 시실리는 나폴리 영역에 속해 있었으므로.. 로드리고가 이를 가져다 써서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하여간.. 졸라 쎈티한 멜로디가 흐른다..

1954년에 세고비아를 위해서 작곡되었고.. 1958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되었는데 바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서 유럽에서도 성공을 이어갔다고 한다.. (출처 : 무식하거나 위선적이거나)




 






헤네랄리페 근처에서  Junto al generalife

Marcin Dylla - J. Rodrigo: Junto al generalife (헤네랄리페 근처에서)

Marcin Dylla, Poland / Live - Wawel Royal Castle at Dusk


Joaquín Rodrigo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prominent guitar composers in the classical guitar repertory. One piece in particular that he wrote, Junto al Generalife, demonstrates the style of Spanish guitar music very well. The title of this piece can be translated as "next to Generalife". The Generalife is a country home for the king of Granada. This was a place for the kings to vacation and relax. The Generalife features an extravagant array of gardens. Rodrigo really captivates this location in Junto al Generalife.


The piece starts off in a slow, smooth singing style. The main motivic idea is the first five scale degrees of e minor. One major aspect of Spanish guitar music is the use of scales. Rodrigo develops this scalar motif starting in measure five and continues this melodic idea throughout the first section. Rodrigo incorporates the different tone colors of the guitar by using "dolce" and "metallico" to make the melodic content more interesting and contrasting. These colors of the guitar are very important to the classical guitarists for interpreting a melody. The next section of this piece also incorporates mostly scalar melodic content. Rodrigo uses "staccato","tenuto", and "pizzicato" to vary the melodic content.







헤네랄리페 궁 수로의 정원(아세키아 정원)

헤네랄리페는 알함브라궁전에 있는 술탄의 여름 궁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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