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Requiem D minor KV.626 Wolfgang Amadeus Mozart (27 January 1756 - 5 December 1791)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음악으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W.A.모차르트가 미완으로 남긴 작품이다. 폰 발제그-스투파흐 (von Walstegg-Stuppach) 백작이 죽은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을 의뢰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부분은 Introitus 전체, Kyrie의 대부분,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성악 파트와 저음 파트, 그리고 중요한 악기의 선율이다.
서양 역사상 다양한 레퀴엠이 작곡되었지만 모짜르트의 레퀴엠은 그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종교음악일뿐만 아니라 가장 잘 알려져있고 중요해서 레퀴엠하면 모짜르트의 그것이 떠오를 만큼 후세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작곡하던 도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으며, 사후에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가 모차르트가 남긴 스케치를 토대로 곡을 완성하였다. 쥐스마이어 판 외에도 하이든의 제자인 노이콤이 완성한 노이콤 판, 바이어 판, 몬더 판 등 여러 판본이 있으며 어떤 음반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판본을 섞어서 연주하기도 한다. 카를 뵘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의 음반이 명반으로 꼽힌다.
Lucerne Festival Orchestra, Bavarian Radio Choir and Swedish Radio Choir on '2012 Lucerne Festival' Soprano: Anna Prohaska, Alto: Sara Mingardo, Tenor: Maximilian Schmitt, Bass: René Pape
Mozart Requiem at the Lucerne Festival in 2012 conducted by Claudio Abbado
레퀴엠이란 라틴어로서 '안식' 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며, 음악에서는 카톨릭교회의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 장례미사곡(missa)으로 우리말로 진혼곡으로 번역될 수 있다. 또한
장례식에서의 예배의식(전례의식)을 카톨릭에서 '안식의 미사'라 하는데 그 기도문의 첫 구절이 Requiem Aeternam ~
(죽은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라고 시작해서 이러한 명칭이 되었다. 즉 위령미사 전례(典禮)에서 첫머리의 입당송(入堂頌,
Introit)이 라틴어의 레퀴엠(Requiem)으로 시작되고 있으므로 이 미사를 <레퀴엠 미사>라고 부른다.
레퀴엠곡으로서 작곡되는 것은 미사의 통상문(通常文)인 기리에, 상투스, 아뉴스 데이, 그 밖에 몇 곡의
<미사고유문>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곡의 구성은 미사 통상문에서 글로리아와 크레도를 빼고 레퀴엠 고유문을 더한 것으로 브람스(독일)의 「독일 레퀴엠」(성악곡)이나 포레(프랑스)의 「레퀴엠」 등 극히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 입제문(Introitus)·키리에(Kyrie)·그라두알레(Graduale)·트락투스(Tractus)·세퀜티아(Sequentia)·상투스(Sanctus)·아뉴스 데이(Agnus Dei)·성체배령송(Antiphona ad Dommunionem)의 순서로 구성되는데 그라두알레와 트락투스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어느 것이나 라틴어 전례문에 의했다.
모차르트(오스트리아)의 「레퀴엠」 d단조는 이미 죽음을 예기하고 있었던 최만년의 작품이다. 세퀜티아인 「눈물의 날」을 끝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뒷일을 부탁받은 제자 쥐스마이어(Süssmayr, 1766~1803)가 보필 정정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서 완성한 유작이다.
작곡을 의뢰한 것은 발제크(Franz von Walsegg)라는 백작인데, 그는 아내의 기일(忌日)에 자기의 작품으로 발표하기 위해 심부름꾼에게 익명의 의뢰장을 써 주고 모차르트(오스트리아)를 찾아가게 했다. 1791년 7월의 일인데, 그 심부름꾼이 회색 옷을 입고 이상한 용모에다가 아무래도 의뢰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모차르트(오스트리아)도 무척 깊이 생각한 모양이다. 마침 「마적」의 완성 때문에 몹시 바쁘긴 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하던 그는 아내 콘스탄체와도 상의하여 고액의 보수로 이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의 죽음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생각이 종종 모차르트(오스트리아)의 가슴을 스쳤던 모양이다. 음산한 회색 옷의 사나이의 이미지에 위협을 받으며, 죽음의 자리에 누운 뒤에도 그는 레퀴엠의 완성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불행히도 미완성인 채 끝났다곤 하나, 모차르트(오스트리아) 만년의 고상하고 맑은 울림은 이 곡을 고금의 레퀴엠 중 최고 걸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편성은 혼성4부의 독창과 합창, 그리고 플푸트·오보에를 제외한 2관 편성의 관현악과 오르간에 의했다.
제1곡 「입당송 Introitus」: Requiem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Adagio d단조 4/4.
목관의 느린 선율을 이어받아 베이스로 시작되어 소프라노에 달하는 합창이 ‘주여, 영원한 안식을’하고 노래하면서 차례로 참가한다. ‘천주여, 시온에서’부터는 소프라노의 독창으로 연주된다. 이어지는 ‘나의 기도를’은 합창이 되고 다시 베이스에서 소프라노로 ‘영원한 안식’ 이하를 이어받아 노래해 간다.
German tenor and conductor Peter Schreier (페터 슈라이어, 1935)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Rundfunkchor 라이프 치히 라디오 합창단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의 독송으로 유명하며, 가사는 1200년, 선율은 130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전적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제일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후의 심판을 행하는 신의 진노가 잘 나타나 있는 음악이다. 영화 '아마게돈'의 주제가로도 유명하다.
Dies irae, dies illa. solvt saeclum in favilla, Tests David cum Sibylla.
Quantus tremor est futurus, Quando judex est venturus, Cuncta stricte discussurus!
Slovak(슬로바키아) Philharmonic Orchestra and Choir, Zdenek Kosler conducting.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Huic ergo parce, Deus.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Amen.
눈물의 그 날이로다. 죽은 자들이 재에서 소생하네 당신의 심판을 받으러
자애로우신 주 예수여 Gentle Lord Jesus, 그들을 당신의 안식에 거하게 하소서. 아멘
이곡은 모짜르트가 죽기전에 그의 앞에서 간단하게 초연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눈물을 왈칵 솟았다고하는 부분으로 대단한 인기곡이다.
여러 면에서 이 대작 전체에 있어서의 정점이다.
레퀴엠 시작부분의 엄숙한 D단조로 다시 돌아가는 “라크리모사”는,
모든 서양 음악 중에서 가장 친밀하면서도 열렬한 기도 중의 하나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부르고 또 불러보고 싶어하는지....
제4곡 「봉헌문 Offertorium」 전곡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주예수 그리스도 Domine Jesu Christe」 Andante g단조 4/4.
4부 합창으로 시작되고 ‘원컨대 그들이 지옥에’부터는 테너·알토·소프라노·베이스의 순서로 푸가(독주곡)토가 전개되어 간다. 이 합창이 일단 끝나면 ‘돌아가다, 기수인 성 미카엘이’이하는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의 순서로 독창에 의한 카논이 되고, ‘이것은 주가 이전에 아브라함과’부터는 다시 합창의 푸가(독주곡)가 베이스부터 차례로 전개되어 장대하게 곡을 마친다.
제2부 「희생과 기도 Hostias」 Andante E플랫장조 3/4.
먼저 ‘주여, 찬미의 희생과 기도를’ 이하는 밝은 가락의 합창에 의해 불려지고 이어 g단조 4/4로 바뀌며, ‘이것은 주가 이전에 아브라함과’ 이하를 힘차게 부르고 끝난다.
제5곡 「상투스 Sanctus」(거룩하시다) 이것도 전곡이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거룩할진저, 만군의 천주이신 주」 Adagio D장조 4/4.
4부 합창이 힘차게 ‘거룩할진저(상투스)’를 세 번 반복하고, 후반의 ‘지극히 높은 곳까지 호산나’는 Allegro 3/4. 베이스·테너·알토·소프라노의 순서로 당당한 푸가(독주곡)를 전개한다.
제2부 「베니딕투스 Benedictus」 Andante B플랫장조 4/4.
우아한 전주 뒤 ‘주의 이름에 의해서’이하를 알토가 독창으로 부르고, 소프라노가 이것을 이어받아 간다. 이어 F장조로 옮겨가 베이스와 테너의 짧은 독창부를 끼고 4중창이 전개되어 간다. ‘지극히 높은 곳까지 호산나’는 Allegro 3/4. 전곡과 마찬가지로 푸가(독주곡)로 불려지지만 이번에는 테너·알토·소프라노·베이스의 순서이다.
제6곡 「아뉴스의 데이 Agnus Dei」(하느님의 어린 양)
Larghetto d단조 3/4.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하를 4부 합창이 세 번 반복한 뒤 마지막에 ‘영원히’하고 힘차게 덧붙이고 곡을 마친다.
제7곡 「성체배령송 Comrnunio」: Lux aeterna (그들에게 영원한 빛이 내리게 하소서)
Adagio d단조 4/4.
성체 배령은 미사 전례의 중심이 되는 주요한 행사로, 성체란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와 살에 비유한 포도주와 빵이다. 여기서는 제1곡 및 제2곡의 선율이 그대로 사용되어 최후의 장엄한 부분을 매듭짓고 있다. 먼저 제1곡의 소프라노 독창의 선율에 의해 여기서도 소프라노가 ‘주여, 영원한 빛을 그들의 위에 비추어 주옵소서’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이어 4부 합창이 이것을 받는다. 곡이 일단락되면 알레그로로 바뀌고 제2곡의 장려한 2중 푸가(독주곡)의 악상에 의해 ‘영원히 주의 성인과 함께 계시기를’이 전개된다. 마지막에는 다시 아다지오로 바뀌며, ‘주는 자비롭게 계시도다’하고 엄숙하게 부르고 전곡을 끝낸다.
Unfinished portrait of Mozart by his brother-in-law Joseph Lange. 1782
He was born to Leopold and Anna Maria Pertl Mozart in Getreidegasse 9 in Salzburg, the capital of the sovereign Archbishopric of Salzburg, in what is now Austria, then part of the Holy Roman Empire. He was a prolific and influential Austrian composer of the Classical era.
His more than 600 compositions include works widely acknowledged as pinnacles of symphonic, concertante, chamber, piano, operatic, and choral music, and he is among the most enduringly popular of classical composers.
작곡 동기와 초연
작곡 동기는 모차르트 생애 마지막 해인 1791년 여름 빈의 폰 발제그-스투파흐 (von Walstegg-Stuppach, 1763-1827) 백작의 의뢰를 받은 데 있다.
이 귀족은 열렬한 음악애호가이며 스스로 플룻이나 첼로를 연주할뿐더러 자신을 작곡가로 보이고 싶어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791년 2월 14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그의 부인을 위해서 "레퀴엠"을 작곡하여 자작이라고 칭한 다음 이 곡을 봉헌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대리 작곡가로서 모차르트를 택한 것이다.
모차르트 사후인 1793년 12월 14일에 Wiener-Neustadt에서 직접 악보를 사필하여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그가 이 곡을 자신이 작곡했노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곡의 공개 초연은 같은 해 1월 2일 빈에서 판 쉬비텐(van Swieten) 남작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Constanze)를 위해 마련한 연주회에서 이뤄졌다. 곡은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 그의 앞에서 간소히 초연됐다고 전해지는데 모차르트 스스로 라크리모사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고 전해진다.
1933년생인 그는 밀라노에서 태어나 아버지 미켈란젤로 아바도가 교수로 있던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이후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와 함께 지휘를 전공했다.
이후 1958년 쿠세비츠키 콩쿠르, 1963 미트로풀로스 콩쿠르 우승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65년 잘츠부르크 축제 때 처음 지휘한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으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빈 오페라 음악 감독"을 지냈으며 1989년부터 2002년까지는 카라얀의 뒤를 이어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맡기도 했었다. 그 시절에는 독선적인 카라얀과 다른 모습으로 많은 부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아바도.
2000년 위암 진단을 받으며 팬들에게 안타까웠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왔던 모습에 많은 찬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2014년 1월 20일 끝내 향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저버리게 되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세계에 너무나 막대하고 무거운 손실이다"라고 베를린 필이 밝혔던 것처럼 대단했다.
고전파부터 현대음악까지 아울렀던 모습은 두차례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완성했고 낭만파 시대 작품중 말러 교향곡 완성은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유럽청소년 관현악단 창설(1978),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 창설(1986)은 많은 젊음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음악을 통해서 전해주었다.
I. Introitus (2:05) II. Kyrie (7:34) III. Sequentia 1. Dies irae (10:16) 2. Tuba mirum (12:09) 3. Rex tremendae (16:01) 4. Recordare (18:22) 5. Confutatis (23:32) 6. Lacrimosa (25:54) IV. Offertorium 1. Domine Jesu (29:29) 2. Hostias (33:22) V. Sanctus (38:00) VI. Benedictus (39:50) VII. Agnus Dei (45:30) VIII. Communio (49:13)
원래 이 말은 로마시대에 통용된 말로, 법정에서 ‘Ite, missa est(재판이 끝났다)’라고 선언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미사의 마지막에 사제(司祭)가 회중(會衆)을 향하여 “이테 미사 에스트(미사가 끝났으니 가십시오)”라고 선포하였으며, 그것이 발전하여 지금 교회에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시오”라고 말한다는 설이 있다.
또 미사는 성체(聖體)의 제의라고도 한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는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졌을 때 제정한 의식이 그 기원이다. 성서에 의하면(루가 22:14∼22, I 고린 11:23∼29) 그리스도는 빵을 들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라고 했으며, 또 한 잔을 비우고 제자들에게 주면서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고 명하였으므로,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에도 같은 의식을 신자들과 함께 계속하였으며, 그것이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식(祭式)도 그때그때의 풍습과 제복(祭服)을 받아들여 장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식의 집례방식이 지방이나 국가별로 달라서 다양한 전례(典禮)가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식(式) 전례와 비잔틴식(式) 및 콥트식이 유명하다. 11세기에 와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여러 가톨릭 교회에 로마식 전례 방식을 권장하였기 때문에 서방 교회에서는 로마식 미사가 일반화되었다.
원래 미사는 라틴어로 행하였으나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는 자국어로 행하도록 되어 있어,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교회가 각각 자국어로써 행하고 있다.
제식의 순서는 크게 나누면 ① 개회, ② 말씀의 전례, ③ 성찬의 전례, ④ 폐회 등으로 되어 있다. 이상의 의식을 통하여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에게 바쳐지고, 성화(聖化)되어 그리스도가 제정한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의식이 재현됨으로써 그리스도와 신자가 다 같이 자신과 세계를 신에게 바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신자들이 성찬(聖餐),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의식인 영성체(領聖體)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미사의 참된 의의가 있다. (두산백과)
미사에서 쓰이는 전례문에는 ‘통상문(通常文:1년을 통해 변하지 않는 부분)’과 ‘고유문(固有文:교회력에 의해서 변하는 부분)’이 있다. 전자 중에서 5개의 통상문, 즉 키리에(kyrie:연민의 찬가), 글로리아(gloria:영광의 찬가), 크레도(credo:신앙선언), 산크투스(sanctus:감사의 찬가), 아뉴스 데이(Agnus Dei:평화의 찬가)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음악적으로 일괄해서 작곡한 것을 미사곡이라고 한다. 가장 단순한 것은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 및 그러한 종류이지만, 14세기경부터 점차 복음악(複音樂)의 곡이 나타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5개의 장이 각각 다른 작곡가에 의해 독립적으로 다루어졌으나, 프랑스의 G.마쇼가 전 5악장을 한 묶음으로 한 미사곡을 쓴 이래, 이것을 본뜨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무렵부터 르네상스기에 걸친 작곡가 중, 뒤파이, 조스캥 데 프레, 팔레스트리나, 라수스, 빅토리아 등의 미사곡은 전례음악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 후 바로크시대 무렵부터 교회음악에도 오케스트라가 채용되면서 미사곡도 호화로워져 독창 ·중창 ·합창 등을 곁들인 변화가 풍부한 것(칸타타 미사라고 한다)이 나타나게 되었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구노, 프랑크, 브루크너,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이 유명하며, 곡이 대형화함에 따라 미사곡은 전례용 외에 연주회용으로서도 중요시되었다. 본래의 미사곡은 제1장 ‘키리에’만 그리스어이고 나머지는 모두 라틴어이지만, 1963년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자국어로 미사 성제(聖祭)를 할 수 있게 되어 각국에서는 저마다 자기 나라 말로 된 미사곡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독일에서는 루터의 종교개혁(1517) 이후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독일어로 미사곡이 불리었고, 또 가톨릭교회 중에서도 독일 남부의 농촌지대에서는 라틴어에 의한 미사 성제 도중에 미사의 취지에 따라 독일어로 전례성가를 삽입하여 농민을 계몽하기도 하였다. 이것을 독일미사(Deutsche Messe)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는 유명하다. 통상문에 의한 미사곡 외에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은 흔히 고유문으로 만들어지며 레퀴엠(鎭魂曲)으로 불린다. (두산백과)
정식명은 《죽은이를 위한 미사곡》이지만 가사의 첫마디가 "requiem(안식을…)"으로 시작되는 데서 이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진혼곡, 또는 진혼미사곡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기도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장례미사나 그리스도교적 예식이 완성되지 않아 각 지역별로 여러 수도원에서 전승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식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트렌토공의회를 통해 전 교회적 차원의 예절로 정리되어 공포되었는데, 레퀴엠 역시 초기에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중심으로 작곡되었다. 이후 15세기부터 그레고리오성가 선율을 바탕으로 한 다성 레퀴엠이 등장하였는데, 가장 오래된 작품은 오케겜(Ockeghem)의 작품으로 1470년경에 작곡되었다.
17세기 이후 트렌토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장례 예식이 확정되면서, 전례문에 따라 레퀴엠이 작곡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악으로 발전하였고, 푸가 형식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작품도 만들어졌다.
근대에는 모차르트(미완성), 케르비니,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 밖에 루터교회나 성공회의 전례를 위한 것, 그리스교회의 전례에서 죽은이를 위한 레퀴엠도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힌데미트의 《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 등은 교회의 전례와는 관계없는 연주회용이다.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