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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소녀 - 정윤희




정윤희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 안방과 극장을 주름잡았던 트로이카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중의 한명이다
당시 유지인은 지적인 이미지, 장미희는 연기력, 정윤희는 청순가련 백치미의 미모로 승부하였다.
요즘은 인조인간들이 많아 미인들이 흔하지만 저 당시만 해도 성형수술이 힘들어 대부분 자연미인이었는데
지금의 배우들을 포함하여도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라 할수 있다

정윤희는 2장의 앨범을 냈는데 '목마른 소녀', '가르쳐 주세요' 등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목마른 소녀, 정윤희
 


어릴 때 꿈을 꾸었지 / 
사랑이 싹트는 꿈을
언제부턴가 그 꿈에 사는 / 
아! 나는 목마른 소녀
그리고 꿈을 키웠지 / 
사랑이 꽃피는 꿈을
언제부턴가 그 꿈을 먹는 / 
아! 나는 목마른 소녀

기쁨이 넘칠 땐 춤추는 아이 / 
슬픔에 겨울 땐 한 마리 사슴
그렇게 사랑을 했지 / 
눈물도 그때 배웠지
아무도 모를 나만의 얘기 / 
아! 그건 사랑이었네

기쁨이 넘칠 땐 춤추는 아이 / 
슬픔에 겨울 땐 한 마리 사슴
그렇게 사랑을 했지 / 
눈물도 그때 배웠지
아무도 모를 나만의 얘기 / 
아! 그건 사랑이었네
아무도 모를 나만의 얘기 / 
아! 그건 사랑이었네







정윤희 씨를 기억하나요?
 
한국 최고의 미인 배우로 그리고 한류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이미 중화권과 일본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 '아시아 최고의 배우'로 엄청 주목 받았던 정윤희 씨를 아시나요?
 
1954년 경남 충무 태생인 정윤희는 74년 해태 전속모델로 출발해
75년 영화 '욕망으로' 첫 연기를 시작했는데 데뷔작에서 바로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날고 기는 탑클래스 배우들도 데뷔작이나 데뷔 초기에는 대부분 한두 편 이상의 단역과
조연급을 거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화려한 출발인 셈이다.
 
이후 빼어난 미모와 연기로 서서히 인기여배우로 자리 잡아가며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유지인, 장미희 씨와 함께 이른바 제2세대 트로이카 3인방으로 등극한다.
 
데뷔 초기에는 미모보다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80년과 81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과
81년 출연한 '사랑하는 사람아'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키고
대한민국 최정상 여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은 정윤희 씨와 세 편을 찍었는데 촬영감독으로 호흡을 늘 함께 하던
정일성 씨와 입을 맞춰 '그 어떤 카메라 각도에서도 그리고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도
결점과 카메라 사각 없이 예쁘게 잘 나오는 한국에서 유일한 여배우'라고 호평했으며
일본 영화계의 유명 감독도 '일본에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 3명의 매력을 다 합쳐도
정윤희 한 명의 매력을 앞서지 못한다.'라며 칭송한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류라는 말조차도 없던 시절에 일본 현지에서 러브콜을 받고 날아가 광고도 찍고
세계적인 스타들만 시상자로 초대받을 수 있다는 동경 국제가요제에 유일한 아시아권 여자 스타로 참가했으며
그 유명한 성룡이 정윤희 씨에게 반해서 적극 구애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대만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아 현지에 초청받아 가서 타이페이 공항에서부터 그녀를 구경하러 온
현지 대만팬들 때문에 청사가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났었던 일화 등 사실상 한류스타의 원조가 되는 배우이다.
 
헐리우드에서도 이름을 떨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헐리우드 메이저영화의 모 감독이 기획하던 영화에서
아시아 배우가 1명 필요해서 한중일 여배우 자료를 찾던 중 정 씨의 사진과 필름자료를 발견하고는 바로 낙점해
적극 러브콜을 한국으로 보냈으나 때마침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개인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결국 제안을 고사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사상 최초 헐리우드 진출 한국 여배우가 될 뻔했다.
 
참고로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높고 스케줄이 바빴는가 하면 전속이던 제품의 광고 촬영 때
다른 모델들은 며칠씩 찍는데 반해 정 씨만큼은 예외적으로 하루에 몰아서 깡그리 찍었다고 한다.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스타였던데다 스케줄이 초 살인적이라서 아예 스케줄 가장 적은 날을
광고주 측에서 간신히 골라 그날 그녀를 촬영장에 데려와서 무조건 사진을 몰아 찍고는
광고주가 그 중 '이 사진은 껌 광고에 싣고 저 사진은 쥬스 광고에 싣고' 이런 식으로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몰아 찍기를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일화를 남기고 1985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영구 은퇴하고,
자선 바자회나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당대의 트로이카 여배우 유지인, 장미희 씨와 함께
 












은퇴후 30대 후반 즈음, 영화인들의 날에 초청되어 20대인 강수연과 함께...

 


넘사벽이련가? ^^
 















정윤희는 여배우로서 짧지만 화려했던 시절을 누린 스타입니다.
그는 1975년 '욕망'이라는 영화로 데뷔해 총 36편의 영화를 찍고
84년 '사랑의 찬가'를 끝으로 스크린을 떠났습니다. 



 
80년과 81년에는 2회 연속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연기파 배우로도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던 그녀.







불타는 입술과 농염한 몸매로 까까머리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그녀,, 


 
양귀비의 환생이라는 말-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미인이라 칭송받는 그녀.


 
사슴같은 눈망울에 앵두같은 입술. 전형적인 미인입니다. 
 

 
그리고 최근 사진입니다.(54세)여전히 고우네요~






알맞은 키에 알맞은 가슴과 바가지 두 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히프를 가진 여자.
360도 팬(회전)해 봐도 고르고 알맞게 살찐 여자. 
어쩌면 작은 몸매에 그토록 알맞은 몸의 균형을 가지고 있을까?
 
대바구니에 담아도 담겨질 것 같은, 주머니에 넣어도 
전혀 무게를 느끼지 않을 것만 같은 새 같은 여자다.
윤기 흐르는 까무잡잡한 피부는 블랙 올페의 연인을 연상케 하고 
가늘고 긴 목과 작은 어깨는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킨다.
 
카메라가 그녀의 앞가슴을 열어젖히면 왼쪽 가슴에서부터
오른쪽 가슴으로 대각선을 이루며 흐르는 두 개의 점이 나타난다. 
그 두 개의 점이 어쩌면 몸의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는지 다시 한번 경탄케 한다. 
그 점을 떼어 몸의 각 부문의 무게 비례를 저울에 달아 본다면 아마도 정확한 평균치가 나올 것이다.
작은 공간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큰 공간에서는 한없이 커 보이는 여자

/영화감독 김호선











황금비율 여신 미모 '정윤희' 70년대 출연영화

영화

개봉년월일

관객수(서울)

욕망

1975-07-26

              8,247

청춘극장

1975-09-20

           23,870

목마와 숙녀

1976-04-10

           26,351

핏줄

1976-00-00

 

임진왜란과 계월향

1977-00-00

 

고교얄개

1977-01-29

         258,978

고교 우량아

1977-04-30

         106,402

얄개행진곡

1977-08-19

         147,567

나는 77번 아가씨

1978-11-16

         217,249

도시의 사냥꾼

1979-03-19

           95,996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05-25

         216,628

사랑이 깊어질 때

1979-06-15

           17,498

가을비 우산속에

1979-08-23

         159,335

죽음보다 깊은 잠

1979-12-07

         101,698

내가 버린 여자 2

1980-03-28

           36,713

우요일

1980-04-17

           24,497

최후의 증인

1980-11-15

              7,424

강변부인

1981-01-01

           28,632

사랑하는 사람아

1981-02-27

           39,39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1-03-01

         112,24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10-24

         169,381

아가씨 참으세요

1981-11-21

              9,464

아벤고 공수군단

1982-05-01

           51,359

여자의 함정

1982-05-22

         190,230

춘희

1982-08-26

           29,995

여자와 비

1982-09-04

           58,445

진아의 벌레먹은 장미

1982-10-09

           52,760

정부

1982-12-04

           35,431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83-01-01

           27,568

안개마을

1983-02-12

           23,455

사랑하는 사람아(속)

1983-00-00

 

약속한 여자

1983-06-18

              7,399

질투

1983-07-02

           12,856

땜장이 아내

1983-10-08

              3,468

동반자

1984-03-24

           20,432

사랑의 찬가

1984-11-17

              2,963

사랑하는 사람아 제3부

1985-03-03

           13,350

 









2011.11.26 - [미디어인뉴스] 청순하고도 섹시한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배우 정윤희..
평범한 주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녀가 아들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 
다시금 팬들을 찾아왔습니다..그 자세한 소식, 지금 만나보시죠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정윤희의 막내 아들인 조모씨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정윤희 아들의 비보는 지난 24일 밤, 미국 정보를 한국어로 제공하는 미국 현지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졌는데요

당시만 해도 미국 LA소재의 사립명문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 재학 중인 한 유학생이 갑자기 급성 폐렴증세를 일으켜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알리며 현지에서는 마약복용설이 나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이 언론 매체는 26일 새벽, 다시 그 사망한 한국 유학생이 배우 정윤희의 아들이라고 보도했고 이와 함께 
정윤희 아들의 사망소식이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에 추측들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전화인터뷰: 강주영 기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소는 조씨의 1차 부검결과 타살이나 자살의 흔적은 없고, 
약물 복용으로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킨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약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인데요. 
조씨는 친구들과 함께 한 파티에서 급성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뒤 숨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배우가 아닌, 어머니 정윤희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50대의 정윤희라네요..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정윤희 집 경매, 남편 조회장 채무액 53억원

배우 정윤희가 20년 넘게 거주한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진다. 부동산 경매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열린은 8일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정윤희의 남편 조규영 회장 소유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가 법원 경매에 부쳐진다고 밝혔다.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은 1988년 아파트를 매입해 가족과 함께 20년 넘게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중앙건설이 자금난으로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경매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채권자인 국민은행은 조규영 회장의 대출금과 이자 20억원을 받기 위해 경매 신청을 했다. 
이 아파트는 전용 면적 196㎡ 규모로 지난 6월 경매개시결정이 내려져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첫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아파트는 최근 시가 25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또한 아파트 외에도 중앙건설 소유의 토지도 함께 경매에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고양시 탄현동 소재 등 40개 필지 토지 6만9284㎡와 탄현동 소재의 또 다른 토지 1788㎡가 각각 10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입찰에 부쳐질 예정이다.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는 "등기부상 채무액이 53억원에 달해 중간에 경매가 취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윤희의 남편 조규영 회장의 중앙건설은 2000년대 중반 '중앙하이츠'라는 브랜드로 아파트 공급을 활발하게 해왔다. 
그러나 2010년 경제 위기 및 건설경기 침체로 워크아웃에 들어간데 이어 올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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